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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경주기행 (복수극, 가족코미디, 상실)

idea50912 2026. 10. 12. 16:38

목차


    주말 저녁, 넷플릭스로 오랜만에 영화가 보고 싶어 봤는데 웃기면서 동시에 가슴이 먹먹했던 영화가 있습니다. 처음엔 황당한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차오른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경주기행〉을 보면서 딱 그 감각을 느꼈습니다. 살인범을 트렁크에 싣고 복수 여행을 떠나는 가족 이야기인데, 웃음 뒤에 8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작품 정보

    감독·각본: 김미조

    개봉: 2026년 8월 26일

    러닝타임: 110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등장인물과 배우

    • 옥실 (이정은) — 오랜 연극 무대를 거쳐 〈기생충〉의 문광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입니다. 이번엔 딸을 잃은 그날에 멈춰 선 채 살아온 엄마를 연기합니다.
    • 장주 (공효진) — 〈파스타〉, 〈괜찮아 사랑이야〉, 〈동백꽃 필 무렵〉으로 사랑받은 배우입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가족을 돌봐 온 맏딸을 맡았습니다.
    • 영주 (박소담) — 〈검은 사제들〉, 〈기생충〉으로 알려진 배우입니다. 서운함을 누른 채 자기 삶에 집중하는 냉정한 둘째로, 가족사진을 찍으며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 동주 (이연) — 먼저 떠난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질투를 함께 안고, 시도 때도 없이 사고를 치는 셋째입니다.
    • 백상현 (변요한) — 〈미생〉의 장백기,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으로 알려진 배우입니다. 이번엔 서늘한 얼굴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이 영화, 진짜 복수극이 맞긴 한 걸까?

    처음엔 단순한 액션 코미디인 줄 알았습니다. 막내딸 경주를 죽인 백상현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는 설정에서 이야기의 방향이 어느 정도 예상됐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니, 납치한 살인범을 앞에 두고 가족들이 밥 걱정을 하고, 내비게이션 경로 이탈로 56분이 늘었다며 싸우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장면이 연달아 나옵니다.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웃음으로 풀어내는 블랙코미디인데, 이 웃음이 단순히 재미를 위한 장치만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복수를 준비하는 가족의 모습이 어설플수록, 이들이 지난 8년 동안 얼마나 서툴게 슬픔을 버텨 왔는지가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고 믿지만 현실은 늘 틀어지는 것처럼, 누군가를 잃은 뒤의 삶도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요.

    다만 폭력 장면이 지나치게 가볍게 그려질 때는 조금 걸렸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그 폭력이 웃음의 재료가 되는 순간에는 불편함이 남았습니다.

    가족 코미디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을까?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인물은 엄마 옥실입니다. 8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전면에 드러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쓰러질 뻔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장면들에서 그 상처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옥실이 복수를 결심한 이유가 단순히 '범인이 밉다'는 감정이 아니라, '더 이상 이 슬픔 속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으로 그려지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반부에 옥실이 백상현에게, 복수를 포기하고 싶어질까 봐 무서웠다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날카롭게 남았습니다.

    세 딸의 갈등도 같은 맥락입니다. 같은 상처를 겪었다고 슬픔을 견디는 방식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행동으로 풀려 하고, 누군가는 냉정하게 따지고,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이 모습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김미조 감독이 밝힌 이야기

    • 제목의 의미: '경주'는 관광지 이름이자 잃어버린 막내딸의 이름이고, '기행'은 여행과 기이한 행동이라는 두 가지 뜻을 함께 담았다고 합니다.
    • 이야기의 출발점: 감독 본인이 실제로 네 딸 중 막내로 자란 경험과, 경주 여행에서 받은 인상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 인물의 디테일: 옥실을 미싱사로 설정한 데에는, 이 가족이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복수가 끝난 자리에 남은 건 상실뿐이었다

    많은 복수극이 마지막에 통쾌함을 안겨 줍니다. 그런데 〈경주기행〉은 그 통쾌함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복수는 이뤄지지만 법적 책임이 뒤따르고, 옥실의 행동은 재판 과정에서 하나하나 정리됩니다.

    이 선택이 영화의 가장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가족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개인이 직접 벌을 내리는 게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지 않고 그 판단을 보는 사람에게 맡겨 둡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8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옥실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경주를 배웅하던 그 순간입니다. 옥실은 영화 내내 그날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엔 딸을 붙잡지 않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넵니다. 이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코미디 영화인가요, 진지한 드라마인가요?

    둘 다입니다. 전반부는 가족의 어설픈 복수 시도가 웃음을 주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실의 무게가 드러납니다. 웃으려고 봤다가 마지막에 먹먹해질 수 있습니다.

    Q. 사적 복수를 다룬 영화인데, 즐겁게 봐도 되나요?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과 그 행동을 옳다고 보는 건 다릅니다. 이 영화는 피해자 가족에게 공감하면서도 복수의 결과를 피하지 않고 보여 줍니다. 그 불편한 균형을 함께 생각하며 보시길 권합니다.

    Q. 마지막에 왜 갑자기 8년 전으로 돌아가나요?

    복수 이후 옥실에게 남은 일은 딸을 마음속에서 보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붙잡지 않고 배웅하는 그 장면이 옥실의 진짜 작별 인사입니다.

    결론

    〈경주기행〉을 보고 가장 오래 남은 건 트렁크 속 살인범도, 엉망으로 꼬여 가던 복수 계획도 아니었습니다. 8년 전 그날로 돌아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막내딸을 붙잡지 않고 배웅하던 옥실의 얼굴이었습니다. 웃음으로 가득했던 영화가 그 장면에서 조용히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폭력이 웃음의 재료로 쓰이는 몇몇 장면은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정은을 중심으로 한 네 모녀의 연기와, 복수 뒤에 남는 상실을 외면하지 않는 결말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실컷 웃다가 마지막에 먹먹해지는 영화를 찾는다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