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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 가족과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영화를 틀었습니다.
처음엔 다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반쯤 딴청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흘러가자 하나둘 휴대폰을 내려놓고 화면에 빠져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서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이야기하느라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외계 포식자가 인간을 이기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물러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인간을 데려가 냉동 보관합니다. 이게 《프레데터: 킬러 오브 킬러스》의 핵심 전제입니다. 처음 이 설정을 알았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사냥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야우차(Yautja) 특유의 문화와 세계관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 덕분에 훨씬 선명하게 펼쳐졌습니다.
원제: Predator: Killer of Killers
감독: 댄 트랙텐버그, 조슈아 와성(공동 연출)
공개: 2025년 6월 6일, 디즈니+(미국은 훌루)
형식: 세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소개: 실사 프리퀄 《프레이》(2022)에 이어 프레데터 세계관을 애니메이션으로 넓힌 작품입니다. 바이킹, 일본의 검객, 2차 대전 미 해군 정비공처럼 서로 다른 시대의 전사들이 프레데터와 맞섭니다.
등장인물과 성우
- 우르사 — 바이킹 전사, 1편 주인공 / 린지 러밴치
- 켄지 — 형제 중 형, 2편 주인공 / 루이스 오자와
- 키요시 — 형제 중 동생 / 루이스 오자와(1인 2역)
- 토레스 — 2차 대전 미 해군 정비공, 3편 주인공 / 릭 곤잘레즈
- 밴디 — 토레스의 상관 / 마이클 빈

세계관: 841년부터 1942년까지, 프레데터의 시대 초월 사냥
이 작품이 기존 프레데터 시리즈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시대를 함께 다룬다는 구조입니다. 841년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전사 우르사, 1609년 일본의 닌자 켄지, 1942년 2차 대전 대서양 상공의 미 해군 정비공 토레스. 세 인물이 각자의 시대에서 프레데터와 맞닥뜨립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시대마다 싸움 방식이 확연히 달랐다는 점입니다. 우르사는 물속 싸움에서 프레데터의 열감지를 역이용해 반격을 시작합니다. 열감지(Thermal Vision)란 야우차가 생명체의 체온을 감지해 어둠 속에서도 사냥감을 쫓는 능력인데, 물속에서는 이 신호가 흐트러진다는 약점을 찾아낸 것이 우르사 이야기의 핵심이었습니다.
켄지의 이야기에는 형제 사이의 오랜 원한이 깔려 있습니다. 20년 만에 형제가 검을 맞대는 순간, 갑자기 프레데터가 끼어들며 이야기가 급변합니다. 사람 사이의 갈등과 외계의 위협이 겹치면서 긴장감이 두 배로 쌓이는 방식이 꽤 영리했습니다. 원수였던 형제가 끝내 힘을 합치는 장면은, 나란히 자라도 떨어질 때는 혼자라는 나뭇잎의 비유와 함께 이 시리즈에서 보기 드문 감정적 울림을 남깁니다.
토레스의 1942년 이야기는 스케일이 압도적입니다. 40년대 전투기 편대가 클로킹(Cloaking) 기술을 갖춘 야우차 함선과 맞붙습니다. 클로킹이란 함선이나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눈으로는 존재를 알아챌 수 없게 하는 기술이죠. 당연히 40년대 전투기로는 상대가 안 되고, 토레스는 화력이 아니라 상황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포식자를 제압합니다. '인간은 머리로 이긴다'는 프레데터 시리즈의 공식을 잘 이어받은 장면이었습니다.
- 우르사(841년): 물속 싸움에서 열감지를 흐트러뜨려 역전
- 켄지(1609년): 형제 갈등과 외계 위협이 겹치며 긴장감 배가
- 토레스(1942년): 클로킹 함선을 상대로 화력 대신 상황을 활용한 묘수
- 세 이야기 공통: 힘이 아니라 지혜와 상황 판단으로 포식자를 제압
야우차 문화와 제작 배경, 그리고 솔직한 아쉬움
이 작품이 단순한 액션 애니메이션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야우차 문화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야우차는 우리가 흔히 '프레데터'라고 부르는 종족의 이름으로, 전사 문화를 바탕으로 한 문명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인간을 죽이는 것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을 쓰러뜨릴 만큼 강한 사냥감을 찾아내고 모으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도 사냥감이 납치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우차는 냉동 수면(Cryo-Sleep)으로 사냥감을 오래 보존하는데, 생체 기능을 극도로 낮춰 시간을 넘어 생명체를 보관하는 기술입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전사들이 결국 한 공간에 모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인간들이 야우차의 사냥 경기장에서 다시 싸우게 되는 설정은 지금까지 본 프레데터 시리즈 중 가장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제작 방식도 눈에 띕니다. 원래 게임 개발에 쓰이던 실시간 렌더링 도구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을 활용해 만들어서, 게임처럼 선명하고 역동적인 영상미가 살아 있습니다. 감독은 《더 보이즈》 시즌1의 1화를 연출했고, 프레데터 프랜차이즈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프레이》의 감독이기도 한 댄 트랙텐버그입니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프레데터 팬이라면 믿음이 가는 부분입니다.
트랙텐버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프레이》의 결말이 뿌려 둔 씨앗을 이 작품이 천천히 풀어 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연결 고리가 다음 작품 《프레데터: 배드랜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벌어질 이야기를 위한 포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시리즈의 연속성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결말부를 특히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세 인물의 이야기가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다 보니 감정선이 충분히 쌓이지 못합니다. 특히 우르사의 복수 서사는 오랜 한이 담긴 이야기인데, 그 무게가 화면에 충분히 전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세계관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후속편의 여지를 남겨 둔 의도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봅니다. 결말이 충분히 다음 영화나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평론가들의 반응도 대체로 호평이어서, 프레데터 시리즈 가운데 손꼽히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프레이》를 안 봐도 이해되나요?
저는 《프레이》를 먼저 보고 이 작품을 봤는데, 안 봤더라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프레이》를 보고 나서 보면 결말부에서 반가운 연결 고리를 만날 수 있어서, 순서대로 보는 쪽이 더 풍부한 경험이 됩니다. 시리즈 입문작으로도 충분합니다.
Q. 야우차가 인간을 납치하는 이유가 뭔가요?
단순한 전리품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쓰러뜨릴 만큼 강한 사냥감을 냉동 수면 상태로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사냥에 쓰기 위해서입니다. 야우차 문명의 '사냥감 수집'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언리얼 엔진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 그래픽이 어색하지 않나요?
처음엔 게임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액션 장면의 역동성이 기존 애니메이션보다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색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프레데터 특유의 어둡고 거친 분위기와 잘 맞았다고 봅니다.
Q. 세 인물이 한 공간에 모이는 설정이 억지스럽지 않나요?
보는 시각에 따라 갈립니다. 세계관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도 있고, 후속편의 여지를 남긴 의도적 선택으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야우차 문화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느껴 크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Q. 잔인한 장면이 많나요?
수위가 꽤 높은 편입니다. 피가 튀고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이 자주 나오니, 이런 묘사에 민감한 분이나 어린 자녀와 함께 볼 때는 주의하세요.
결론
《프레데터: 킬러 오브 킬러스》를 처음 틀 때는 프레데터가 인간을 하나씩 사냥하는 익숙한 공식의 애니메이션 버전 정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바이킹의 바다, 일본의 성, 2차 대전의 하늘이라는 전혀 다른 세 전장을 지나며, 이 작품이 결국 하나의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포식자 앞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세 이야기가 내놓는 답은 한결같습니다. 힘이 아니라 지혜, 무기가 아니라 상황을 읽는 눈입니다. 우르사는 물속에서 열감지가 흐트러지는 약점을 찾아내고, 형제는 20년 묵은 원한을 내려놓고서야 외계의 위협을 넘어섭니다. 토레스는 상대도 안 되는 클로킹 함선을 화력이 아닌 상황 활용으로 제압합니다. '인간은 머리로 이긴다'는 공식을 세 시대에 걸쳐 각기 다르게 변주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재미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남은 건 형제의 이야기였습니다. 서로에게 칼을 겨누던 두 사람이 더 큰 위협 앞에서 등을 맞대고, 마지막 순간 서로를 놓지 않는 장면은 액션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감정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언리얼 엔진으로 구현한 영상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선명하고 역동적인 화면이 프레데터의 거칠고 어두운 분위기와 잘 어울렸고, 특히 공중전 장면은 실사로는 구현하기 어려웠을 스케일을 애니메이션만의 방식으로 풀어냈습니다. 마지막에 전사들이 야우차의 사냥 경기장에 모이는 결말은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영리한 마무리입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습니다. 세 이야기가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다 보니 인물들의 감정선이 충분히 쌓이지 못하고, 우르사의 복수 서사는 그 무게에 비해 빠르게 소비됩니다. 세계관 설명도 부족해서,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께는 결말부가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프레데터 팬이라면 세계관이 이렇게까지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우실 겁니다. 처음 접하는 분이라도 짧고 강렬한 액션 단편 세 편을 본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시면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프레이》를 먼저 보세요. 결말부의 반가움이 몇 배로 커질 겁니다.
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건, 시대와 무기가 달라져도 인간이 포식자를 이기는 방법은 언제나 같았다는 사실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상대의 빈틈을 읽어 내는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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