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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무 약속 없이 쉬는 날, 미뤄 두었던 영화를 드디어 꺼내 봤습니다.
간단한 간식을 챙겨 거실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은 무음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처음엔 기대 반 의심 반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마음이 쏠렸습니다.
다 보고 나니 쉬는 날을 이 영화로 채운 게 꽤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분 동안 초능력을 준다는 약. 듣기만 해도 솔깃하지 않나요? 저도 처음엔 가볍게 볼 넷플릭스 액션물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원하는 그 힘, 정말 당신 것이 맞나요?
작품 정보
원제: Project Power
감독: 헨리 주스트, 아리엘 슐만
공개: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줄거리: 삼키면 5분 동안 무작위로 초능력이 생기는 알약 '파워'가 뉴올리언스 거리에 퍼지고, 형사와 전직 군인, 10대 소녀가 그 배후를 쫓는 액션 스릴러입니다.
등장인물과 배우
- 아트(소령) — 딸을 찾는 전직 군인 / 제이미 폭스
- 프랭크 셰이버 — 파워를 몰래 쓰는 형사 / 조셉 고든 레빗
- 로빈 라일리 — 파워를 파는 10대 소녀 / 도미니크 피시백
- 비기 — 파워를 퍼뜨리는 조직의 인물 / 호드리구 산토루
- 뉴트 — 거리의 파워 딜러 / 콜슨 베이커(머신 건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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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짜리 초능력이 위험한 이유
영화 속 '파워'는 캡슐 하나를 삼키면 5분 동안 초능력이 생기는 약입니다. 문제는 어떤 능력이 나올지 먹는 사람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방탄 피부가 생길 수도, 몸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올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그 자리에서 폭발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설정을 보면서 '랜덤 박스'가 떠올랐습니다.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 사고 싶은 심리. 파워는 그 심리를 아주 노골적으로 건드립니다. 로빈이 파워를 파는 장면에서도 단순한 마약 거래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 보였습니다.
흔히 사람은 뇌의 10%만 쓴다는 말이 있지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이지만, 영화는 바로 그런 상상, 약 하나로 내 안에 잠든 힘을 끌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정면으로 파고듭니다. 터무니없는 설정인데도 묘하게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뉴트가 욕심을 부리다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하는 장면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 알도 결과를 모르는 약인데 말이죠. 공포보다 허망함이 먼저 왔습니다. 힘을 더 원할수록 더 빨리 망가진다는 메시지가 이 장면에 압축돼 있었습니다.
로빈의 성장 — 빌린 힘 vs 내 힘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로빈이 랩을 하는 장면입니다. 학교에서는 무시당하고, 엄마는 당뇨로 아프고, 돈을 벌려면 파워를 팔아야 하는 상황. 그런데도 로빈은 파워를 직접 먹지 않습니다. 대신 아트 앞에서 맨몸으로 랩을 쏟아 냅니다.
처음엔 좀 뜬금없다고 느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랩이라니. 그런데 다시 보니 그게 핵심이었습니다. 로빈은 파워 없이도 상대를 압도했습니다. 총이나 약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요. 겁먹은 소녀가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아주 정직한 성장 이야기입니다.
도미니크 피시백이라는 배우를 저는 이 영화 전까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보는 내내 그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겁먹었을 때의 눈빛과 랩을 쏟아 낸 뒤의 눈빛이 완전히 다릅니다. 대사 없이 표정 하나로 성장을 보여줬죠. 제이미 폭스나 조셉 고든 레빗보다 도미니크 피시백이 이 영화의 진짜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빈이 보여준 건 단순한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밖에서 주입되는 능력을 거부하고, 이미 자기 안에 있던 것을 믿는 선택이었습니다.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인물이 파워 없이 가장 강한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왜 하필 뉴올리언스였을까
헨리 주스트와 아리엘 슐만 감독은 다큐멘터리 《캣피쉬》로 이름을 알린 뒤 《파라노말 액티비티》 속편, 《너브》를 만든 콤비입니다. 그래서인지 뉴올리언스를 그냥 배경으로만 쓰지 않습니다. 카니발과 재즈, 화려한 거리 이면에 있는 빈곤과 불평등을 화면 곳곳에 끼워 넣었습니다.
이 선택은 의도적으로 보였습니다. 뉴올리언스는 빈곤율이 미국 평균보다 크게 높은 도시로 꼽힙니다. 파워 같은 약이 퍼진다면 가장 먼저 손을 뻗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보입니다.
영화는 이 불평등을 초능력으로 눈앞에 그려 냅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파워를 투자 상품처럼 다루고, 가난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파워를 삼킵니다. 투자자들 앞에서 매끄럽게 시연되는 파워와 골목에서 몰래 거래되는 파워가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습니다. 같은 약을 이렇게 다르게 다룰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같았습니다.
10대 딜러, 방탄 형사, 딸을 찾는 아버지. 체제 안에서는 어울릴 수 없는 세 사람이 체제가 만든 문제 앞에서 손을 잡는 구조도 이 도시라서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진짜 힘은 어디서 오는가 — 프랭크와 아트의 답
프랭크의 능력은 방탄 피부입니다. 총에 맞고도 멀쩡히 일어나죠. 그런데 저는 그 장면보다 프랭크가 상관에게 불만을 쏟아 내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를 움직인 건 방탄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겠다는 신념이었으니까요. 파워는 그 신념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아트는 더 분명합니다. 그의 딸 트레이시에게는 치유 능력이 있었고, 마지막에 아트를 살린 건 약이 아니라 딸의 손이었습니다. 처음엔 좀 뻔하다고 생각하려다 멈췄습니다. 끊어졌던 부녀 관계가 '치유'라는 능력으로 회복된다는 구조가 너무 정직하게 맞아떨어져서, 오히려 뭉클했습니다.
- 로빈: 약이 아닌 랩, 원래 자기 안에 있던 재능과 목소리
- 프랭크: 방탄 피부가 아닌 사람을 지키겠다는 신념
- 아트: 능력이 아닌 딸을 찾는 아버지의 사랑
아쉬운 점
악당 조직의 동기는 꽤 납작하게 그려졌습니다. 투자자들 앞에서 파워를 시연하는 장면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로는 악당 이야기가 얕아집니다. 설정이 워낙 풍부하다 보니 다 담기에는 러닝타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제작 뒷이야기
이 영화는 극장이 문을 닫았던 2020년 여름에 공개돼, 넷플릭스 미국 영화 순위 1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습니다. 블록버스터가 사라진 여름에 그 빈자리를 채운 작품이었던 셈이죠. 아리엘 슐만 감독은 액션 연출은 자신들도 여전히 현장에서 배워 가는 중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 자막과 더빙 모두 지원됩니다.
Q. 파워를 먹으면 어떤 능력이 나오는지 미리 알 수 있나요?
영화 설정상 먹는 사람도, 만든 조직도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에 따라 능력이 달라지는데, 무엇이 나올지는 먹어 봐야 압니다. 그래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깁니다.
Q. 도미니크 피시백이 실제로 랩을 한 건가요?
네. 시와 공연으로 경력을 쌓아 온 배우라, 랩 장면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됐습니다.
Q.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이 많나요?
총격전과 격투가 있고, 파워를 먹은 뒤 몸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장면도 있어 자극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에 민감하신 분은 참고하세요.
결론
〈프로젝트 파워〉를 처음 틀 때는 화려한 초능력 액션을 가볍게 즐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건 불꽃과 폭발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파워가 무서운 건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대가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일수록 더 절박하게 그 약에 손을 뻗습니다. 화려한 뉴올리언스 거리 이면에 빈곤과 불평등을 겹쳐 놓은 연출은, 이 영화를 단순한 슈퍼히어로물과 구분 짓는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가장 분명한 답을 내놓은 건 로빈이었습니다. 끝내 파워를 삼키지 않고 자기 목소리로 맞서는 열여섯 살 소녀. 프랭크를 움직인 신념, 아트를 살린 딸의 손까지,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힘은 처음부터 사람 안에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악당 이야기가 얕고 일부 장면이 자극적이라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래도 매번 다른 능력이 튀어나오는 예측 불가의 재미와 로빈의 성장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합니다.
남에게 빌린 힘은 5분이면 사라지지만, 내가 믿고 키워 온 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진다면, 약 대신 자기 목소리를 택한 로빈이 작은 용기가 되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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