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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총을 든 사람이 영웅인가, 아니면 그 옆에서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영웅인가. 가이 리치 감독의 <더 커버넌트>를 보고 나서 그 질문이 훨씬 선명해졌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아프가니스탄 배경의 액션물이려니 하고 틀었다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꽤 오래 멍하니 있었습니다.

약속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
전쟁 영화 하면 흔히 폭발과 총격, 영웅적인 돌격 장면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더 커버넌트>는 그 공식을 조금 비틀어 옵니다. 이 영화의 진짜 중심은 미군 상사 존 킨리(John Kinley)와 현지 통역사 아흐메드(Ahmed) 사이의 관계이고, 그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커버넌트(Covenant), 즉 계약이자 약속이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커버넌트란 단순한 구두 합의가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한 상호 책임의 서약을 의미합니다.
아흐메드는 처음부터 단순한 번역가가 아닙니다. 영화 초반, 그가 매복(ambush)을 직감적으로 감지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매복이란 적이 은폐된 위치에서 기습을 가하는 전술을 말하는데, 아흐메드는 지형과 도로 상태, 길잡이의 행동 패턴을 종합해 이를 추론해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그가 단순히 언어를 통역(interpretation)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 전체를 읽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실감했습니다. 통역(interpretation)이란 언어 변환을 넘어, 문화적 맥락과 현장 상황을 함께 해석하는 행위입니다.
아흐메드는 과거 헤로인 거래에 연루된 가족 배경을 갖고 있고, 한때 탈레반과도 접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미군 편에 선 이유는 탈레반이 그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그가 매복을 의심하며 차량을 세운 장면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목숨을 건 경고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여러 명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반면 임무가 끝나고 킨리가 부상으로 후송된 뒤, 아흐메드와 그의 가족에게 돌아온 것은 비자(visa) 9개월 대기라는 현실이었습니다. 비자란 외국인이 특정 국가에 입국하기 위해 발급받는 공식 허가증으로, 이 영화에서는 목숨을 살린 사람에게 주어지는 국가적 약속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킨리가 콜센터에 전화를 걸며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은, 개인의 인간적 빚과 국가 시스템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저는 그 장면이 폭발 장면보다 훨씬 더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 아흐메드의 매복 감지: 언어 통역을 넘은 상황 판단력
- 비자 9개월 대기: 국가 시스템과 개인적 책임 사이의 충돌
- 킨리의 선택: 제도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약속을 이행
진짜 전쟁 영웅은 어느 쪽인가
이 영화를 두고 "후반부 구출 작전이 전형적인 액션 공식에 너무 기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 부분은 동의하는 편입니다. IED(즉석폭발장치) 공장을 급습하고, 스팩터(Spectre) 항공 지원을 요청하며, 탈출하는 시퀀스는 긴박하긴 했지만, 앞부분의 심리적 밀도에 비하면 다소 공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IED란 Improvised Explosive Device의 약어로, 정규 군수품이 아닌 재료로 만든 불법 폭발물을 말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 피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후반부에서 인상적으로 본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킨리가 부상을 입은 채로 아흐메드의 손에 이끌려 1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부분, 그리고 병원 침대에서 "메달은 나한테 줄 게 아니라 아흐메드에게 줘야 한다. 나는 그냥 승객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이 대사 하나가 영화 전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압축합니다.
전쟁 영화에서 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받는 인물이 반드시 가장 많이 싸운 사람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이 영화는 정면으로 던집니다. 훈장이란 국가가 군사적 공헌을 인정하는 공식 표창인데, 이 영화는 그 시스템이 포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흐메드는 탈레반의 최우선 제거 대상(most wanted list)에 오르면서도 공식 기록에는 남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가이 리치 감독은 이 지점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 킨리가 사재를 털고 아내와 집을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보여줍니다.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도덕적 부채(moral debt)라는 개념을 영화는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도덕적 부채란 법적·계약적 의무가 아닌, 은혜를 입은 자가 내면에서 느끼는 갚아야 한다는 무게감을 말합니다. 저는 이 무게를 킨리가 콜센터 직원에게 고함을 지르는 장면에서 가장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미군에 협력했던 현지 통역사와 조력자들의 비자 문제는 매우 심각한 현실 이슈였습니다. 출처: UNHCR(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과 망명 신청자 수는 2021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으며, 협력자 신분으로 탈출을 시도한 이들의 비율도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또한 출처: Human Rights Watch는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이 협력자로 분류된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추적·처형했다는 사례를 다수 보고했습니다. 영화가 픽션이지만, 그 배경은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커버넌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특정 실화를 직접 각색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함께 일한 현지 통역사들이 겪은 실제 상황, 즉 탈레반의 보복 위협과 비자 발급 지연 문제를 배경으로 삼아 만든 픽션입니다. 이 문제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로 보는 시각도 있고, 가이 리치가 만든 완전한 창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Q. 아흐메드가 탈레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가 뭔가요?
A. 아흐메드가 부상당한 킨리를 100킬로미터 넘게 이끌어 탈출시킨 사건이 아프가니스탄 민간에 퍼지면서, 그의 이야기가 탈레반에 저항하는 일종의 민담처럼 퍼졌습니다. 탈레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추격했음에도 미군을 놓친 사건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아흐메드를 제거해야 할 상징적 표적으로 삼게 됩니다. 단순히 협력자여서가 아니라, 그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졌다는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Q. 후반부 액션이 너무 전형적이라는 평이 있는데, 그래도 볼 만한 영화인가요?
A. 후반부가 다소 공식적인 구출 작전 형식으로 흐르는 건 사실입니다. 저도 전반부의 심리적 긴장감에 비해 아쉽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전투 장면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이고, 그 관계를 이해하고 보면 후반부의 액션도 의미가 달라집니다. 전쟁 액션보다 인물 중심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영화에서 파커(Parker)라는 인물은 어떤 역할인가요?
A. 파커는 민간 군사 계약업체(PMC, Private Military Contractor) 운영자로, 킨리가 공식 채널로는 아흐메드를 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사비를 들여 고용하는 인물입니다. 민간 군사 계약업체란 정부나 군이 아닌 민간 기업이 군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파커는 계약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지만, 결국 킨리가 단독으로 움직이면서 이야기가 가장 극적인 국면을 맞이합니다.
결론
더 커버넌트를 보고 난 뒤 제가 오래 생각한 건 전투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메달은 그에게 줘야 한다"는 킨리의 말이었고, 9개월을 기다리라는 콜센터 직원의 목소리였습니다. 진짜 약속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지키는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메시지를 이 영화는 꽤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인물 중심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분들에게도 한 번은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후반부보다 전반부에 더 집중해서 보시는 걸 권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쌓이는 장면들을 제대로 봐야, 킨리가 왜 다시 전쟁터로 갔는지가 납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