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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 가족과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영화를 틀었습니다.
처음엔 다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반쯤 딴청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흘러가자 하나둘 휴대폰을 내려놓고 화면에 빠져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서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이야기하느라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범죄자도 원칙이 있으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처음 이 질문을 떠올렸을 땐 좀 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파커〉를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동료에게 배신당해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한 남자가, 자신만의 원칙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복수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설득력 있었습니다.
작품 정보
원제: Parker
감독: 테일러 핵포드
개봉: 2013년
원작: 리처드 스타크(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필명)의 소설 《플래시파이어》
등장인물과 배우
- 파커 — 원칙을 지키는 프로 범죄자 / 제이슨 스테이섬
- 레슬리 로저스 — 팜비치의 부동산 중개인 / 제니퍼 로페즈
- 멜랜더 — 파커를 배신한 강도단 우두머리 / 마이클 치클리스
- 헐리 — 파커의 스승이자 연인 클레어의 아버지 / 닉 놀테

배신과 복수극 — 파커라는 인물이 특별한 이유
영화는 처음부터 빠르게 달립니다. 변장한 일당이 박람회장을 털고, 프로 중의 프로 파커가 신호를 주자마자 작전이 시작되죠. 불필요한 설명 없이 곧장 사건 속으로 밀어 넣는 방식이 제 취향에 딱 맞았습니다.
문제는 한탕을 끝낸 직후 터집니다. 동료들이 훔친 돈을 합쳐 더 큰 판을 벌이자고 제안하는데, 파커만 거절합니다. 그 의견 차이는 대화가 아니라 총격으로 결론이 나죠. 이 장면이 영화 전체의 핵심, 욕망과 원칙의 충돌을 단 몇 분 안에 압축해 보여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파커가 살아 돌아와 복수를 계획하는 과정은 전형적인 안티히어로 이야기입니다. 나쁜 놈 같지만 묘하게 응원하게 되는 주인공이죠. 파커는 범죄자이지만, 감당할 여력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훔치지 않고 다칠 이유가 없는 사람은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선을 끝까지 지킵니다. 그래서 "범죄자도 원칙이 있으면 공감이 간다"는 말이 이 영화에서는 빈말이 아닙니다.
복수를 위해 파커는 가짜 신분과 자금을 마련하고, 텍사스 석유 부호로 둔갑해 배신자들이 숨어든 팜비치로 들어갑니다. 신분을 완전히 바꿔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을 꽤 꼼꼼하게 보여 주는데, 단순한 액션 영화에서 이 정도까지 공들일 줄은 몰라서 예상 밖이었습니다.
- 첫 한탕 뒤 팀 내부의 갈등과 총격 배신 — 복수극의 방아쇠
- 가짜 신분으로 팜비치에 들어가 배신자들의 동선 파악
- 무고한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는 원칙 — 파커를 응원하게 만드는 축
- 부동산 중개인 레슬리와의 예상치 못한 협력
액션과 연출 — 시원하지만 아쉬운 지점들
후반부의 핵심은 수천만 달러어치 보석이 걸린 경매장 작전입니다. 불을 질러 혼란을 만들고 그 틈에 보석을 쓸어 담는 구조죠. 〈오션스 일레븐〉처럼 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이는 게 아니라, 파커 한 사람의 판단과 몸에 크게 기댑니다. 팀워크가 약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게 오히려 의도라고 봤습니다. 파커는 처음부터 팀이 아니라 혼자 끝내는 사람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짜릿했던 건 작은 디테일이었습니다. 레슬리가 저 남자의 총이 안 나갈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파커는 전날 밤 몰래 들어가 놈들 총 대부분의 공이를 휘어 놨다고 담담하게 답합니다. 힘만 센 주인공이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게 이 한마디로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레슬리에 대한 평은 엇갈립니다. 우연히 파커의 정체를 눈치챈 부동산 중개인이 갑자기 작전에 끼어드는 흐름이 작위적이라는 의견도 있고,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현실적으로 와닿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레슬리가 위기에서 스스로 총을 집어 드는 장면이 오히려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느꼈습니다.
아쉬운 점
긴장감이 충분히 쌓이지 않는다는 점은 솔직히 거슬렸습니다. 파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확신이 너무 일찍 생겨 버립니다. 주인공이 지나치게 완벽하게 그려진 탓이죠. 몇몇 상황은 우연으로 풀리는 느낌도 두 번 이상 받았습니다. 걸작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전개 속도와 깔끔한 편집 덕분에 보는 내내 리모컨에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흡입력은 확실한 영화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작이 있나요?
있습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리처드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1960년대부터 써 온 범죄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 바로 파커입니다. 영화는 그중 《플래시파이어》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원작 팬이라면 활자 속 파커가 스크린에서 어떻게 그려졌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Q. 폭력 수위가 높은 편인가요?
총격, 격투, 칼에 찔리는 장면이 있고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았습니다. 다만 잔혹함을 내세우기보다 액션의 박진감에 집중한 연출이라, 이 장르를 즐겨 보는 분이라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겁니다.
Q. 결말은 깔끔한가요?
네. 파커는 배신자들과 그 배후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하고, 함께한 레슬리에게도 약속한 몫을 보내며 이야기가 깔끔하게 닫힙니다. 뒷맛이 개운한 복수극입니다.
결론
〈파커〉를 처음 틀 때는 제이슨 스테이섬표 액션 영화를 가볍게 즐길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기대는 충분히 채워집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남은 건 액션보다 처음의 질문이었습니다. 범죄자도 원칙이 있으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꽤 분명하게 "그렇다"고 답합니다.
파커는 분명 범죄자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절대 넘지 않는 선이 있습니다. 동료들이 더 큰 욕심을 위해 그 선을 넘으려 할 때 파커는 거절했고, 그 대가로 총에 맞아 버려집니다. 그래서 이 복수극은 돈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원칙을 지킨 사람과 욕망을 택한 사람들의 대결이었습니다. 이 구도 덕분에 범죄자인 파커를 끝까지 응원하게 됐습니다.
제이슨 스테이섬은 이런 인물에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말수는 적지만 눈빛과 몸짓만으로 단단한 신념을 드러내고, 텍사스 부호로 위장하는 장면에서는 능청스러운 연기까지 보여 줍니다. 제니퍼 로페즈의 레슬리도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평범한 사람의 욕망을 보여 주며 영화에 활기를 더합니다.
긴장감이 덜하고 우연에 기대는 장면이 있다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래도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개운한 결말 덕분에, 복잡하게 머리 쓰지 않고 시원한 복수극 한 편을 즐기고 싶은 날이라면 이만한 선택도 드뭅니다.
사람을 믿게 만드는 건 그가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끝까지 지키는 선이라는 것. 범죄의 세계 한가운데서도 자신만의 원칙을 놓지 않은 한 남자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오래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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