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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딱 하나의 덕목으로만 정의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요. 영화 《다이버전트》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용감하거나, 지식이 있거나, 솔직하거나. 딱 하나만 고르라고 강요하는 세계에서 그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소녀 트리스의 이야기는, 제 예상보다 훨씬 날카롭게 현실을 건드렸습니다.
분파 시스템 — 통제가 평화처럼 보일 때
영화의 배경은 미래의 시카고입니다. 전쟁 이후 인류는 사회를 다섯 개의 분파(faction)로 나눠 운영합니다. 여기서 분파란 인간의 특정 덕목을 절대적 가치로 삼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용기를 최고 가치로 삼는 돈트리스(Dauntless), 지식을 숭상하는 에러다이트(Erudite), 이타심의 에브니게이션(Abnegation), 정직의 캔더(Candor), 평화의 어마티(Amity)가 그것입니다.
제가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디스토피아(dystopia) 장르 — 즉 겉으로는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억압적인 사회를 그린 서사 — 에 익숙한 편인데도, 분파 시스템은 꽤 그럴싸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갈등은 최소화되며, 질서는 유지됩니다. 나쁘지 않아 보이죠.
하지만 영화는 곧 이 시스템의 균열을 드러냅니다. 열여섯 살 베아트리스는 적성 테스트(aptitude test)를 받습니다. 여기서 적성 테스트란 각 개인이 어느 분파에 적합한지를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판별하는 의식으로, 사실상 평생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검사입니다. 그런데 베아트리스의 결과는 단 하나의 분파로 수렴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이버전트(Divergent)'였습니다.
다이버전트란 어느 하나의 분파로 분류되지 않고 복수의 가치를 동시에 지닌 존재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시스템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은 그들을 위협으로 간주합니다. 적성 테스트를 담당한 토리가 다급하게 결과를 숨기라고 경고하는 장면에서, 이 세계가 얼마나 촘촘한 공포 위에 세워졌는지 처음 실감했습니다.
- 돈트리스(Dauntless): 용기를 최고 덕목으로 삼는 전사 분파. 도시의 경비를 담당한다.
- 에러다이트(Erudite): 지식과 지성을 추구하는 분파. 영화 내 권력 찬탈의 핵심 세력.
- 에브니게이션(Abnegation): 이타심과 희생을 가치로 삼으며 정부를 운영하는 분파.
- 캔더(Candor): 정직을 절대 원칙으로 삼는 분파.
- 어마티(Amity): 평화와 친화를 추구하는 분파.
다이버전트 정체성 — 트리스가 버텨낸 방식
베아트리스는 돈트리스를 선택하고, 이름마저 '트리스'로 바꿉니다. 이 장면이 저는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한 이름 교체가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새 정체성을 각인하는 행위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새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싸움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돈트리스 입단 훈련은 제가 직접 봤을 때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달리는 기차에 뛰어오르고, 기차 지붕에서 건물 옥상으로 도약하며, 순위 밖이면 무분파자(factionless)로 추방됩니다. 여기서 무분파자란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못해 사회의 밑바닥으로 전락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협력이 아닌 탈락이 기본 구조인 서바이벌 훈련에서, 트리스는 처음엔 최하위권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리스의 성장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교관 포(Four)가 개인 훈련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기술보다 마음가짐을 먼저 건드립니다. "너는 약해. 근육이 없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쪽을 택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유형의 조력자가 서사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2단계 훈련에서는 공포 유발 혈청(fear serum)을 주입해 개인의 공포 반응을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씁니다. 공포 유발 혈청이란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해 실제와 구별할 수 없는 공포 환각을 만들어내는 약물입니다. 보통 신입들은 이 환각 안에서 분파의 방식대로 공포를 '힘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이버전트인 트리스는 달랐습니다. 까마귀 떼가 몰려오는 환각에서 도망가거나 싸우는 대신, 근처 물웅덩이에 머리를 처박아 잠수를 해버립니다. 공포의 논리를 거부하고 다른 방식으로 돌파한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용감함'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교관 포의 공포 시뮬레이션 속에 동행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그의 두려움은 높은 곳, 밀폐 공간, 무고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입니다. 포는 자신의 등에 다섯 분파 문신을 새기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친절함을 연습 중입니다"라는 그의 말은, 분파 시스템 바깥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조각하고 있는 또 다른 다이버전트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제 경우엔 포라는 캐릭터가 트리스보다 오히려 더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세뇌와 저항 — 시스템은 왜 사랑 앞에서 멈췄나
영화 후반부는 에러다이트 수장 제닌의 음모가 본격화되는 지점입니다. 에러다이트는 돈트리스 전원에게 의식 제어 혈청(mind control serum)을 주사합니다. 의식 제어 혈청이란 피험자의 자유의지를 마비시키고 외부 명령에만 반응하도록 만드는 신경 약물입니다. 제닌의 목표는 이 세뇌된 군단을 이용해 에브니게이션을 몰아내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장면이 가장 소름 돋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모든 동료들이 초점 없는 눈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수백 명의 인간이 살아 있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그 침묵의 행렬 속에서, 다이버전트인 트리스만 홀로 정신이 온전했습니다. 그 고립감을 영화가 꽤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포가 세뇌된 군중 속에 있었다는 사실은 트리스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세뇌가 풀렸다 다시 걸리는 과정에서 포는 트리스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결국 트리스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쏠 수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시스템이 무너집니다. 논문이나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즉 사랑이 과학적으로 설계된 통제보다 강했다는 이 설정은 영화적 낭만주의이지만, 저는 꽤 효과적이라고 봤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지점이 아쉬움으로도 남았습니다. 초반부에서 영화가 그렇게 정교하게 쌓아올린 '체제 대 개인'의 구조가, 후반부로 갈수록 포와 트리스의 로맨스와 개인 능력 중심으로 귀결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닌이라는 악역도 동기가 단층적입니다. 권력욕이라는 설명 외에, 그녀가 왜 이 세계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게 됐는지에 대한 서사가 거의 없습니다. 출처: IMDb - Divergent (2014)에 따르면 이 영화는 1억 5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전 세계 2억 8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는데, 흥행 성적과 별개로 원작 소설의 세계관 밀도를 영화가 충분히 소화했는지에 대해서는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결말에서 트리스는 엄마를 잃고 아빠를 잃습니다. 거울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던 에브니게이션 출신 소녀가, 하루 동안 부모를 모두 잃고도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이 저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묵직했습니다. 세계관의 허점이나 로맨스의 과잉보다, 결국 사람이 혼자 서야 하는 순간의 무게감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디스토피아 서사 연구에서도 개인의 자율성(autonomy)과 사회적 통제 구조의 충돌은 핵심 주제로 다뤄집니다. 출처: The British Library - What is dystopian fiction?에서도 이 장르의 본질을 "개인이 억압적 시스템에 저항하는 이야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이버전트가 위험한 존재로 취급되는 이유가 뭔가요?
A. 분파 시스템은 인간을 하나의 가치로 고정시켜야 통제가 가능합니다. 다이버전트는 복수의 가치를 동시에 지녀 어느 분파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기반의 세뇌나 통제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시스템 입장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이자 구조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존재인 셈입니다.
Q. 트리스는 왜 에브니게이션이 아닌 돈트리스를 선택했나요?
A. 영화는 이를 단순한 반항이나 모험심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트리스는 에브니게이션의 이타적 삶에 진심으로 의문을 품고 있었고, 자신 안에 있는 용기의 가능성을 직접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파 선택 자체가 정체성 탐색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Q. 교관 포(Four)의 이름이 왜 '포'인가요?
A. 공포 시뮬레이션 훈련에서 대부분의 돈트리스 대원들이 수십 가지 공포를 가지는 반면, 포는 단 네 가지 두려움만을 가졌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높은 곳, 밀폐 공간, 무고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이 그것입니다. 두려움이 적다는 것이 곧 강함의 상징이 된 이름인 셈입니다.
Q. 트리스 엄마가 다이버전트였다는 복선이 있었나요?
A. 직접적인 복선은 많지 않지만, 무분파 지역에서 트리스를 찾아와 적성 테스트 결과를 묻고 2단계 훈련의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점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총을 들고 딸을 지켜내는 마지막 장면은, 에브니게이션의 이타심과 돈트리스의 실전 능력을 동시에 발휘한 장면으로 그녀가 진정한 다이버전트였음을 사후적으로 확인해줍니다.
결론
《다이버전트》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세계관의 논리적 허점, 단순하게 그려진 악역, 후반부의 로맨스 의존은 제가 직접 느낀 아쉬움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타인이 정해준 틀 안에서 스스로를 설명하려 하는가.
트리스가 다이버전트였기 때문에 위험했던 게 아닙니다. 시스템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을 시스템이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 공포의 방향이 결국 영화 전체를 움직입니다. 원작 3부작 소설까지 읽어보신다면, 영화가 단순화한 세계관의 두께를 더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